스톤헨지는 영국 잉글랜드의 윌트셔(Wiltshire) 지방에 위치한 거대한 석조 유적이다. 약 5,000년 전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거대한 돌 구조물은 여전히 그 목적과 건설 방식에 대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스톤헨지가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정교한 천문 관측소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반해 종교적, 의식적 장소였다는 가설도 여전히 유력하다. 그렇다면 과연 스톤헨지는 천문 관측소였을까? 혹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었을까? 다양한 이론과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스톤헨지의 비밀을 파헤쳐 본다.
스톤헨지의 역사와 구조
스톤헨지는 기원전 3000년~2000년 사이에 여러 단계에 걸쳐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단순한 구덩이와 목조 구조물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거대한 사암(사르센석, Sarsen stone)과 푸른 돌(블루스톤, Bluestone)이 배치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이 형성되었다.
스톤헨지는 원형으로 배열된 거대한 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앙에는 도살자석(Slaughter Stone), 힐스톤(Heel Stone), 트릴리톤(Trilithon) 등의 주요 구조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 돌들은 매우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천문학적 정렬을 고려해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천문 관측소 가설
스톤헨지가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천문 관측소로 사용되었다는 가설에는 다음과 같은 근거가 있다.
1) 하지와 동지와의 정렬
가장 대표적인 천문학적 특징은 하지(Summer Solstice)와 동지(Winter Solstice)에 맞춰진 정렬이다. 스톤헨지의 힐스톤(Heel Stone)은 하지 때 떠오르는 태양과 정렬되어 있으며, 반대로 동지 때는 해가 특정한 위치에 지는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스톤헨지가 농경 사회에서 계절을 정확히 측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
2) 달과 별의 움직임
일부 연구자들은 스톤헨지가 달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원형으로 배치된 돌들은 특정한 달의 위상과 일치하며, 고대 사회에서 윤달을 조정하는 데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또한, 플라이어스 블루스톤(Flyers Bluestone)이라고 불리는 일부 작은 돌들은 특정 별자리와의 정렬을 나타낼 수도 있다는 연구가 있다.
3) 수학적 정밀성
스톤헨지의 돌들은 단순히 무작위로 놓인 것이 아니라, 수학적으로 정교한 비율을 유지하며 배치되어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스톤헨지의 구조가 고대 천문학과 기하학적 원리에 기반하여 설계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스톤헨지의 중심부와 외곽 원 사이의 거리는 달력 주기와 연관되어 있다는 분석이 있다.
종교적 및 의식적 장소 가설
반면, 스톤헨지가 천문학적 목적보다는 종교적, 의식적 장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고학자들은 스톤헨지 주변에서 인골(인간의 유해)과 제물 흔적을 발견했으며, 이는 스톤헨지가 의례와 관련된 장소였음을 시사한다.
1) 신성한 의식 장소
일부 학자들은 스톤헨지가 고대 브리튼족의 사원이나 제사 장소였다고 주장한다. 고대 사회에서는 태양과 달이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으며, 이를 기리는 의식이 열렸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하지와 동지에 거대한 축제가 열렸을 것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이때 사람들이 스톤헨지에 모여 제사를 올렸을 수도 있다.
2) 선사시대의 무덤
스톤헨지 주변에서 발견된 유골과 고고학적 유적들은 이곳이 일종의 공동묘지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대 사회에서는 죽은 자들을 하늘의 신들과 연결하는 장소로 특정한 유적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스톤헨지가 단순한 천문 관측소를 넘어 조상의 영혼을 기리는 성스러운 장소였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스톤헨지의 건설 기술과 미스터리
스톤헨지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는 **어떻게 이런 거대한 돌을 운반하고 세웠는가?**이다. 사르센석은 약 20~30톤에 달하며, 일부 블루스톤은 200km 이상 떨어진 웨일스에서 가져온 것으로 밝혀졌다.
고고학자들은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 나무 썰매와 구름기둥을 사용: 원시적인 나무 썰매를 이용해 돌을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 수로를 활용한 이동: 일부 돌은 강을 이용해 뗏목으로 운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인간 노동력과 동물 활용: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협력하여 돌을 이동했으며, 소나 말 같은 동물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학자들은 고대 문명이 예상보다 훨씬 정교한 기술을 보유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 – 스톤헨지는 천문 관측소였을까?
스톤헨지가 천문 관측소였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하지만, 단순히 천문학적 목적만을 위해 지어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신, 이곳은 천문학적, 종교적, 사회적 기능이 결합된 다목적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 천문학적 기능: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농경 사회에서 계절을 측정하는 데 활용됨.
- 종교적 역할: 하지와 동지에 의식을 치르는 신성한 장소로 활용.
- 사회적 결속 장소: 다양한 부족과 공동체가 모여 축제를 즐기고 정보를 공유하는 장소.
결국, 스톤헨지는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고대 사회의 복합적인 문화와 신앙을 반영한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최신 연구와 과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스톤헨지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