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페르민 축제(Running of the Bulls)
스페인 북부의 작은 도시 팜플로나.
해마다 7월이 되면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에 모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축제, **‘산페르민 축제(Fiesta de San Fermín)’**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가장 유명한 행사인 **“소몰이 달리기(Running of the Bulls)”**가 있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좁은 골목길을 전속력으로 달립니다.
그들 뒤를 따라오는 것은 단순한 위험이 아니라, 진짜 살아 있는 황소들입니다.
전통과 종교에서 시작된 축제
산페르민 축제는 원래 성인(聖人) 페르민을 기리는 가톨릭 종교행사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전통은 종교의 경계를 넘어 스페인의 민속과 축제 문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소몰이 달리기는 그중 일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축제의 하이라이트이자 대표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매년 7월 6일부터 14일까지 이어지는 이 축제 기간 동안, 매일 아침 8시, 6마리의 소와 함께 달리는 이 경기는 전 세계 방송에 생중계되며, 수많은 외신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합니다.
소몰이 달리기, 그 극한의 스릴
달리는 사람은 누구든 참가 가능합니다.
단, 나이는 만 18세 이상이어야 하며, 음주 상태거나 고의적으로 위험을 유발하면 참가가 제한됩니다.
이 경기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실제로 생명의 위협이 존재하는 경기입니다.
6마리의 500kg 이상의 투우용 황소와 6마리의 유도용 소가 총 850m 구간을 2~3분 만에 질주합니다.
참가자들은 ‘소에게 너무 가까이 가지도,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말라’는 모순된 원칙 속에서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목숨을 건 승부를 벌입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부상자는 수십 명, 사망자가 나오는 해도 있기에, 단순한 이벤트라 보기 어렵습니다.
위험만 있는 걸까?
산페르민 축제는 단순한 아드레날린 폭발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스페인 문화가 오랜 세월 간직해온 ‘죽음에 대한 정면 승부’, ‘생명의 경외’, 그리고 **‘공동체 정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축제는 에르네스트 헤밍웨이가 1920년대에 참여해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라는 소설로 세계에 널리 알리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그에게 이 축제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인간의 본능과 문명의 경계가 맞부딪히는 상징이었습니다.
윤리 논란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축제에 대해 모든 사람이 박수를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동물권 보호 단체들은 “공포에 질린 동물을 인간의 오락거리로 삼는 비윤리적인 문화”라며 매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달리기 이후 진행되는 투우 경기에서는 결국 소가 죽임을 당하기 때문에,
‘단순한 전통’이라며 옹호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실제로 스페인의 다른 도시에서는 이 축제를 금지하거나 형식을 완전히 바꾸는 등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고 있습니다.
팜플로나에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내가 느낀 산페르민의 이중성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건 솔직히 말해 “와, 미쳤다!”였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볼수록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는 극한의 축제를 “전통”이라는 이유로 지속하는 게 맞는 걸까?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을 앞두고 소가 겪을 공포는 누가 위로해줄까?
그렇다고 이 축제를 전면 금지하자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 문화 속에 내재한 긴장과 감동, 전통과 윤리의 충돌을 함께 이해하고 고민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전통은 변화할 수 있는가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산페르민 축제는 이미 수백 년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그 안의 형식은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스페인 내에서도 ‘소 없는 산페르민’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고,
더 많은 사람이 ‘전통을 보존하되, 생명을 해치지 않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습니다.
마무리하며
산페르민 축제는 단순한 ‘목숨 건 스릴’ 그 이상입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본능, 생명에 대한 존중, 전통의 무게, 그리고 변화의 필요성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내가 만약 팜플로나를 찾게 된다면,
나는 달리기보다는 그 현장에서 바라보며 더 깊이 성찰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전통과 생명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니까요.